서론
저는 눈 수술에서 라운드 니들만 사용합니다.
이름을 대면 성형외과 전문의 사이에서는 다 알만한 모 원장님이 학회 강의 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는 분이어서 그의 말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물론 지금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고 늘 경외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수술방의 꽃인, 봉합사(surgical suture)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봉합사는 상처를 봉합하는 데 사용되며, 수술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재료입니다.
봉합사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요…
4000년 전 기록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마(linen)을 봉합용 실로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인도에서는 B.C. 800년에 말의 털을 이용하여 봉합용 실로 사용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사용되는 우수한 합성물질의 봉합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금속 및 플라스틱 소재 산업이 발달하면서 실이 개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술 장면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집도의가 중요한 수술 과정을 마무리한 후, 피부 봉합을 조수(전공의나 펠로우)에게 맡기고 수술방을 나섭니다. 물론 대학병원이기에 가능하지만, 내부 장기를 수술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과(일반외과, 신경외과 등)들은 피부봉합을 제자들에게 맡기는게 가능한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성형외과는 수술의 마무리 단계인 피부봉합을 할 때 ‘이제 새로 시작이다’라고 할 만큼, 내부 구조물의 수술은 물론 겉으로 보이는 봉합의 결과에도 의사와 환자 모두 예민하기 때문에 드라마와 같은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습니다(나도 마무리 부탁해보고 싶.... ㅠㅠ).
업계 용어로 ‘수쳐(suture)’라고도 통하는 봉합사는 늘 의사국가고시에 한 문제 씩은 출제되어서 의대생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 성형외과 전공의로 선발되기 위해 인턴때에도 열심히 실의 종류와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 외웠던 기억이 있는데요…
사실 그 당시는 녹는 실과 녹지 않는 실 정도만 외웠지, 바늘의 단면과 특징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공부한 바도 없었고, 공부할 필요성도 못 느꼈던 게 사실입니다.
성형외과 전공의로 선발된 후 새벽까지 울리는 봉합 콜을 받으며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늘 쓰던 실을 써오긴 했지만 왜 vicryl이 아닌 PDS를 써야 하는지... 왜 스킨수쳐는 3/8 니들커브를 써야 하는지... 이런 디테일에 대해 고민해본 바는 없었는데요…
하지만 전문의가 되고 제가 직접 집도를 하다보면서 실에 대해서 느낀 점이 많아, 봉합사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제가 느낀 점을 공유해보고 싶어져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본론
봉합사는 같은 굵기라도, 실의 성분에 따라 그리고 바늘 모양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서로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1) 실 종류 : 흡수 vs 비흡수
흔히 의료계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녹는 실’과 ‘녹지 않은 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입니다.
녹는 실
실은 흡수 여부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뉘는데요,
비흡수사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부 봉합에 주로 사용되며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제거하게 되며, 그 시기는 신체 부위, 피부의 두께에 따라 다릅니다. 하지만 특수한 경우도 물론 존재하는데요. 성형외과 영역에서 쌍꺼풀이나 눈매교정, 안면거상에서 SMAS를 고정하는 경우에 피부 속 구조물에도 비흡수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부 표면의 봉합이 아닌 상황인데도 영구적인 실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실의 사용법과는 좀 다른데요… 하지만 몸속에 녹지 않는 실을 가지고 있다해도 대부분 인체에 무해합니다.
녹지 않는 실
끊어지면 안되는 상황의 봉합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피부 속 구조물의 봉합에는 흡수사를 사용합니다. 흡수사는 실의 재질에 따라 녹는 기간이 다르지만 통상 6주-6개월 정도입니다. 하지만 비흡수사와 달리 인체 내 효소에 의해 가수분해되면서 녹기때문에, 감염과 같은 상황에서 외과의의 의도와 달리 창상이 충분히 힐링되기 전에 실의 장력이 일찍 소실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아래는 수술방에서 흔히 사용되는 흡수사와 비흡수사를 소재에 따라 나열하면서, 간략한 특징을 적어보았습니다.
비흡수사 소재
SILK
누에고치에서 얻어지는 천연 실크를 이용해 제조하는 실로 여러 가닥(multifilament)으로 구성되어있다. 다른 비흡수사에 비해 부드러운 편이라 성형외과에서는 눈 주위 봉합에 자주 사용된다.
NYLON
polyamide로 만들어진 단일 가닥(monofilament) 실이며 조직 내에서 영구적인 인장강도를 유지한다. 핸들링이 좋아서인지 11-0나 12-0 같은 실은 혈관 벽을 봉합하거나 수부접합과 같은 현미경 수술에서 흔히 사용된다.
ex) Ethilon®
POLYPROPYLENE
polypropylene으로 만들어진 단일 가닥(monofilament) 실로 표면이 매끄럽고 nylon보다 실의 꼬임 현상이 적다.
ex) Prolene®
흡수사 소재
여러 종류가 있지만 주로 글리콜산(glycolid acid)과 젖산(lactic acid)을 소재로 제조된다
PGA
polyglycolide로 구성된 합성실. 세계 최초의 흡수성 합성실은 미국의 American Cyanamid사에서 제조한 Dexon이다. 통상 60~90일 사이에 완전히 흡수되는데, 이는 흡수사 중 비교적 유지기간이 짧은 편에 속한다(아래 그래프의 붉은색 원).
봉합의 강도는 2주에는 75%, 4주 차에는 25%를 유지한다
ex) Surgifit®, Dexon®
POLYGLYCOLIDE-LACTIDE
세계에서 두 번째 흡수성 합성실은 1975년 미국의 Ethicon사의 Vicryl이며 polyglycolide-lactide를 이용하여 제조된다.
ex) Vicryl®
PGCL (polyglycolic-co-caprolactone)
Vicryl과는 조성을 달리 한 실이며, 보통 75% glycolide와 25% caprolactone의 중합체가 많이 사용된다. 80~120일 사이에 가수분해되어 흡수된다.
ex) Monocryl®, Monofit-S®
PDO
polydioxanone이 주 재료이며 180~240일 안에 완전히 흡수되며, 봉합의 강도는 2주에는 85%, 4주 차에는 70%를 유지한다. 이는 흡수사 중에서도 비교적 늦게 흡수되며 긴 인장력 유지 기간이다(아래 그래프의 푸른색 사각형). 단일가닥(monofilament)이면서 유연하고 표면이 부드럽다.
참고로 시중에 유통되는 안면 실리프팅의 재료로 가장 인기있는 성분이다.
ex) PDS®, Monofit-L®
CAT GUT
소나 양의 점막에서 추출한 콜라겐으로 만드는 실로, 흡수되는데는 90일 정도 소요된다.
ex) Chromic®
녹지 않는 실과 달리, 흡수성 봉합사는 상처가 치유됨에 따라 강도가 서서히 감소됩니다. 따라서 시간의 경과에 따른 강도 변화를 알고있는 것은 필수적이며, 다양한 재료 중에서 실을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겠습니다.
흡수 vs 비흡수로 구분하는 것 외에도 재질에 따라 천연소재 vs 합성소재, 실 섬유의 가닥수가 단일가닥 vs 여러 가닥 등에 따라 구분을 하기도 하며, 특수 재즐을 실 표면에 코팅하기도 합니다.
2) 실의 굵기
수술방에서 근무해본 사람이라면 포-제로, 파이브-제로와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실의 굵기를 나타내는 말인데요…
“포-제로”는 “4-0”로 표기하며 엄밀히 말해서 사번 실이라고 부르면 안됩니다(만… 수술을 하다보면 누구나 성격이 급해지고, 수술 도중에 추가로 실이 필요한 경우 서큘레이팅 널스에게 사 번실 달라고 외치게 됩니다;;). 포-제로는 0이 네 개(0000)를 의미하지만, 축약을 위해 4-0라 표기하는 것이며, 이러한 봉합실의 굵기는 USP(United States Pharmacopeia, 미국약전. 시중에 유통되는 의약품 등의 규격을 표준화시키는 기관)에 의해 통용되는 사이즈를 많이 인용합니다.
아마 수술상을 차리면서 스크럽 널스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 바로 실의 사이즈일텐데요… 아무래도 실의 규격은 봉합사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이 규격은 실 가닥의 지름에 따라 분류합니다. 당연히 실이 가늘수록 실밥 자국이 덜 남겠지만, 무한정 가느다란 실을 사용할 순 없고 실의 굵기는 양쪽 조직을 충분히 잡아줄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실은 신체 부위・피부 두께에 따라 정해져 있습니다.
3) 니들의 모양
수쳐는 실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것이 니들의 모양에 따른 분류입니다.
같은 굵기의 같은 재질로 된 실이라 하더라도
-니들 끝(point)의 모양에 따라,
-니들의 length에 따라,
-니들의 radius(원의 각도)에 따라
제품이 다양하게 제조되며, 외과의라면 적절한 상황에서 올바른 실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a) 니들 끝 단면 모양
대부분의 외과계열에서는 세 종류의 니들(컷팅, 리버스 컷팅, 라운드)을 주로사용합니다.
이 니들 단면에 따라 바늘이 조직을 잘 관통하기도 하고, 뚫기 어렵기도 합니다. 또한 니들 단면이 조직에 만드는 구멍의 형태로 인해, 실이 조직을 잘 잡아주기도 하고, 조직이 쉽게 찢어지기도 합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라운드 니들은 조직에 원형의 구멍을 만들기 때문에 조직을 진입하기는 어렵지만, 대신 뚫린 조직이 쉽게 찢어지지는 않습니다.
컷팅 니들은 조직을 쉽게 뚫고 진입할 수 있는 모양이지만 조직의 강도에 따라 실의 장력이 과하게 작용하면 조직이 찢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리버스 컷팅 니들은 컷팅 니들과는 반대위치에 날이 있어 조직의 찢어짐이 덜 나타납니다.
쌍꺼풀이나 눈매교정 수술 시 안검판을 라운드 니들로 뚫을 때는 바늘 진입 시 저항이 크게 느껴지며, 리버스 컷팅 니들 사용 시에는 진입이 수월함을 서전의 손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대신 미세한 교정을 위해 같은 부위를 다시 뚫어야 한다면 조직이 너덜너덜해질 수 있겠습니다.
마름모꼴의 특수한 모양의 실도 존재하는데, 이는 안과에서 각막 봉합과 같은 경우 사용되기도 합니다.
b) 니들의 크기(길이)
같은 굵기의 실이라도 바늘의 크기가 다양합니다. 조직을 많이 물어야(purchase)하는 경우에는 큰 길이를 선택하게 됩니다.
c) 니들의 곡률
바늘이 휘어진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360도의 원(circle)을 1이라고 보았을 때
180도는 1/2, 135도는 3/8… 이런 식으로 표기하게 됩니다.
흔히 쓰이는 1/2과 3/8의 차이는
1/2는 좁은 공간에서 봉합을 시행해야 하는 경우에 유리하며, 저 같은 경우 하안검을 하면서 눈밑지방재배치때 큰 니들길이의 1/2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3/8은 외과계열 의사들 사이에서는 피부봉합 때 가장 흔히 사용하는 실인데, 이유는 손목을 덜 꺾으면서도 바늘이 90도로 피부 표면을 뚫고 들어갈 수 있어서입니다.
결론
수술용 봉합사의 여러가지 특징들을 나열해보았는데요... 수술부위가 잘 치유될 수 있는 적절한 실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이러한 수술용 봉합사의 조건은
1. 상처가 힐링되기까지 적절한 강도(인장력)를 갖추어야 하고
2. 생체에서 불필요한 조직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고(= 적합성이 양호)
3. 상처가 치유된 후에는 가능한 빨리 흡수가 되어야 하고
4. 시술시 취급이 간편해야 합니다
본론에 언급된 실의 특징과 선택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수술방에서 조직을 세심하게 다루어야 하는 의사 및 수술방 종사자에게 요긴한 정보가 되었길 희망합니다.
'일상다반사 > 진료실 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형외과 세 군데에서 추천해준 수술이 다 달랐어요 (4) | 2024.03.31 |
---|---|
내돈내산(2탄) : 수술용 헤드라이트와 수술용 캠코더 선택 가이드 (5) | 2021.08.16 |
내돈내산(1탄): 수술용 루페 선택 가이드 (4) | 2021.08.14 |